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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곤충 이야기

나무는 냉장고

by 2mokpo 2014. 8. 17.

심장과 혈관으로 체온 조절하는 포유류와 마찬가지 효과, 많은 꿀벌이 한 유기체 형성

코알라가 끌어안는 나무는 냉장고, 수백만 사람 땀샘은 소형 냉방기…진화의 선물

 Ken Thomas _1280px-Honeybees-27527-1.jpg

         벌통이 더워지자 들머리에 나온 꿀벌이 일제히 날갯짓을 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래도 안 되면 몸으로 열을 흡수하는 다음 전략이 동원된다. 사진=킨 토마스

 
큰 더위 없이 올여름을 나게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한낮은 여전히 덥고 사무실 냉방기는 쉴새없이 돌아간다.

여름철 피크전력의 21%는 바로 냉방기가 차지한다.
 

오는 22일은 열한번째 에너지의 날이다.

전력소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날을 기억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시민 주도 기념일이다.

 “불을 끄고 별을 켠” 뒤 생물이 더위를 이기는 진화의 비밀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여름이면 동물원의 북극곰 등 동물이 물과 함께 얼린 과일을 감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언론이 보도하는데

사실 이것은 동물에 대한 모독이다.

동물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정교하고 교묘한 온도 조절 기법을 체득하고 있다.

최근 주요 학술지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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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벌은 집단이 일을 나눠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벌통의 온도가 오르자 꿀벌 한 마리가 환기를 시작하고 있다.

   다른 꿀벌들도 곧 동참한다. 사진=비외른 아펠, 위키미디어 코먼스   

 

꿀벌 성체는 50도까지 버티지만 벌통 속 애벌레는 온도에 매우 예민해

32~35도 사이를 유지하지 않으면 기형이 발생하는 등 발생에 차질이 빚어진다.

개미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새끼를 더 시원한 안쪽으로 이동시키지만 꿀벌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벌통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여기서 생겨났다.


날이 추울 때 꿀벌은 가슴근육을 사람이 떨듯이 진동시켜 열을 발생시킨다.

반대로 더우면 일벌들이 벌통 안에 물을 뿌리고 일제히 날갯짓을 해 증발열로 내부를 식힌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그러나 더 시급하게 열을 식힐 필요가 있을 때는 ‘열 차폐’라는 수단을 동원한다.

일벌이 애벌레를 등지고 뜨거운 벌통 표면에 배를 밀착시켜 열을 차단하는 것이다.

필립 스타크스 미국 터프츠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나투어비센샤프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꿀벌이 몸으로 열을 막는 행동을 실험을 통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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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벌의 벌통 식히기 실험 결과. 위는 꿀벌이 있는 벌통이고 아래는 없는 벌통이다.

   같은 열을 가했을 때 위 벌통에서는 꿀벌이 열을 주변으로 퍼뜨려 3분만에 더운 부위가 커졌다

   9분 뒤엔 정상 온도로 떨어졌지만(위 그림) 꿀벌이 없는 벌통에선(아래 그림) 18분 동안 고온 상태가 지속됐다.

    사진=스타크스, <나투르비센샤프텐>

 

그 결과 일벌은 벌통의 뜨거운 부위에 배를 대 마치 스펀지로 물을 빨아들이듯이 열을 흡수한 뒤

주변의 상대적으로 선선한 곳에 그 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뜨거운 열을 분산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벌통에 조명으로 열을 가한 뒤 10분이 지났을 때 꿀벌이 없는 벌통의 온도는 40도였지만

벌들이 열을 흡수한 곳에서는 안전 온도 이내로 떨어졌다.

 

스타크스는

 “열을 뜨거운 곳에서 선선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포유동물이 심장과 혈관을 이용해

열을 전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벌통의 수많은 꿀벌은 하나의 초유기체를 형성해 포유류의 심혈관계처럼 작동해 더위를 이겨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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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알라가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적외선 촬영했다.

    코알라가 끌어안고 있는 것은 사실 냉장고 구실을 한다. 사진=스티브 그리피스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알라는 늘 나무를 끌어안고 있다.

이 동물은 유칼립투스 나무의 몇몇 종만을 먹는다.

그런데 종종 먹지도 않는 나무를 끌어안는 모습이 관찰된다.

마이클 커니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 동물학자 등은 최근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 나무가 코알라에게 냉장고 구실을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3종과 오스트레일리아아카시아 1종을 주로 끌어안는데,

35도가 넘는 폭염일 때는 아카시아를 주로 찾는 것을 알았다.

조사했더니 유칼립투스는 주변보다 2도, 아카시아는 7도나 낮았다.

코알라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더 시원한 나무를 찾아 몸을 식히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코알라의 보전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오스트레일리아에 50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종종 닥치는데,

코알라의 서식지를 보전하려면 냉장고 구실을 하는 나무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 배설물 경단 위에 오른 남아프피카 사바나 쇠똥구리의 적외선 사진. 푸른색이 낮은 온도, 붉은색은 높은 온도를 가리킨다. 사진=요켄 스몰카.jpg

          » 배설물 경단 위에 오른 남아프피카 사바나 쇠똥구리의 적외선 사진.

           푸른색이 낮은 온도, 붉은색은 높은 온도를 가리킨다.

           사진=요켄 스몰카.jpg

 

코알라와 비슷한 예로 남아프리카 쇠똥구리는 축축한 배설물 경단의 증발열을 이용해

몸을 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배설물 경단은 먹이이자 이동식 에어컨인 셈이다.
 

새들도 포유동물처럼 더우면 부리를 열고 헉헉댄다.

그러나 건조한 지역에서 그런 행동은 치명적이다.

그때 새들의 부리는 훌융한 방열판 구실을 한다.

깃털로 덮혀있지 않은데다 혈관이 밀집해 있어 열을 식히기엔 안성마춤이다.

가장 큰 방열판을 장착한 새는 남미 아마존의 큰부리새로 몸속 열의 60%까지 부리를 통해 방출한다.
 토코큰부리새. 부리는 주요한 방열통로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jpg

           깃털로 덮이지 않고 혈관이 밀집한 부리는 새들이 수분을 잃지 않고 체온을 조절하는 방열판이다.

           남아메리카의 토코큰부리새.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아프리카코끼리는 혈관이 많은 커다란 귀를 부채처럼 펄럭여 열을 방출한다.

그런데 귀 못지않은 방열장치가 최근 발견됐다. 바로 성글게 난다.

성긴 털의 끝 부분은 피부로 인해 공기 흐름이 막히는 털 밑부분보다 공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열을 바깥으로 뿜어내는 통로 구실을 한다.

컴퓨터에서 과도한 열을 식히는데 쓰는 ‘핀-휜 형 방열판’과 같은 얼개이다.

털은 체온의 최고 23%를 배출한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사람도 더위에 견디는 여러 장치를 고안했다.

그 가운데 말을 뺀 다른 동물에선 보기 힘들고 성능도 뛰어난 것이 땀 흘리기이다.

우리 피부에는 200만~400만개나 되는 땀샘이 있다.

 

땀의 주성분인 수분이 증발하면서 증발열을 빼앗아 몸을 식혀준다.

보통 정도의 운동을 하면 시간당 2ℓ의 수분이 증발한다.
 

우리 몸은 빌딩 옥상에 있는 냉각탑과 같은 원리의 소규모 냉각장치를 수백만대나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 진화의 발명품은 점점 사장되고 있는 것 같다.

 땀을 흘리고 부채질이나 산들바람에 몸을 식혀본 이는 그 성능을 안다.

하지만 에어컨의 설정온도는

 ‘땀샘 냉각기’가 작동하기엔 너무 낮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