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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자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by 2mokpo 2014. 5. 6.

[오태규 칼럼] 자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록 : 2014.05.05 18:52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세월호 참사 헌정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의 애절한 가사가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모두를 슬프고 부끄럽게 한다. 마치 당신 안에는 ‘도망자 이준석 선장’이 없는지,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 해경’은 없는지,

질타만 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그분’은 없는지를 묻는 듯하다.
침몰 마지막 순간에 천진한 학생들이 남긴 동영상을 보면, 그들은 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 명백하다.

책임을 묻자면 그 정도에 따라 선장 및 선원, 해경,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 선사, 언론 등 하나하나 차례로 줄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책임과 무능, 협잡과 적당주의를 용인하고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302명의 무참한 희생자 앞에 우리는 크건 작건 어느 만큼씩은 모두 죄인인 셈이다.
<한겨레21>이 참사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가 앞으로도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재발할 것이라 답했다.

무시무시한 얘기다. 지금과 같은 ‘성과(돈) 중시-안전(인간) 무시’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는 준엄한 경고이리라.
결국 이런 참극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선 ‘세월호 이전’의 불안사회에서 ‘세월호 이후’의 안전사회로 건너가는 것이 필수적일 터인데,

문제는 그 방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나 국가안전처 설치도 그 자체로는 그럴듯한 해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치 수학 문제를 풀면서 과정은 생략한 채 정답만 제시하는 것 같은 섣부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정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에 더해 자성의 결여, 책임감 부재가 도드라진다.

지도자가 자기 책임은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아랫것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따라오라는 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지금은 그런 방식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다.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위기 때 가장 좋은 배는 리더십’(The best ship in times of crisis is leadership)이라는 격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런 때는 지도자의 구실이 절대적이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지도력은 낙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종일관 제3자적 자세와 화법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여론에 떼밀려 억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공감능력 제로’의 지도자라는 혹평을 자초했다.

참사 이후 철옹성 같았던 높은 지지율이 낡은 토담처럼 우수수 무너져내리고 있는 게 모든 걸 말해준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반전의 기회는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풀자고 손을 내민다면

더욱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 자책·자성하고 나서는데 이를 외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해온 사회 기풍을 일신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일반 시민도 지도자만 욕할 처지에 있는 건 아니다. 날마다 적당주의와 무책임, 성과지상주의에 비겁하게 타협하며 살아오면서

이번 참사에 조금씩이나마 원인을 제공해온 공범들이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내 잘못은 없었는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위 따로, 아래 따로 놀아서는 절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낼 수 없다. 세월호 같은 참사의 되풀이를 막을 수 없다.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은 수십년 전, 민족의 참극인 6·25전쟁을 겪고도 각성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는 사회를 향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절규한 바 있다. 지금 함 선생이 나타나 한마디 한다면,

‘자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일갈할 성싶다. 상하좌우 가릴 것 없이 자성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라고 할 것 같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