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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사교육 탈출] 두 딸의 선택 존중한 유이분씨

by 2mokpo 2013. 11. 12.

[사교육 탈출] 두 딸의 선택 존중한 유이분씨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거리에서 ‘탈 경쟁, 탈 학벌’을 외치는 청년의 모습을 어떤 블로그 글에서 우연히 접했다. 그 당당함이 좋아 보여 저 친구의 엄마를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딸을 놔둔 채 일을 해야 했고, 적극적 사회활동도 미룰 수 없었던 한 엄마의, 위험해 보이지만 남다른 교육이야기를 들어본다. 11월3일 보리출판사 경영지원살림꾼대표 유이분씨를 만났다.

어느 날 부산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참 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 고교에 입학한 큰딸한테서 “엄마 나 학교 그만 둘래”라는 문자가 오는 거야. 기가 막히는 게, 그때 내가 했던 강의 주제가 ‘아이들에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게 하지 마라’는 거였거든. 폼 잡고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런 문자가 온 거야. 사람들이 무슨 문자냐고 막 물어보잖아. 처음엔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답장을 쓰다가 ‘에이씨’ 그러면서 득득 지우고 ‘그래라’고 썼지. 집에 돌아와서 왜 관두려 하느냐고 물어보니 이유가 구구절절이 많은 거야. 좋아하는 운동화도 못 신게 하고 억지로 해야 할 게 너무 많고 다른 아이들하고 경쟁하기도 싫고 학교가 공부 잘하는 아이와 안 하는 아이 딱 구별해 놓고 될성부른 싹들만 키우려 하는 그런 느낌도 싫고…. 그래서 알았다 그랬어. 그리고 약속을 했지. ‘이담에 너 후회하지 않기다. 엄마, 그때 왜 두들겨 패서라도 공부 안 시켰어. 뭐 이런 원망 하지 않기다. 그리고 이제부터 네 인생 네 거니까 니 앞날은 네가 개척해야 한다. 나는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랬더니 너무 발랄하고 경쾌하게 “엄마, 알았어~.” 그러더니 1년을 잠을 자더라고.(웃음) 내가 특별히 뭘 요구한 게 없어. ‘앞으로 뭐 할 건지 써가지고 와봐’ 라든가 ‘계획표를 가져 와 봐’ 이런 거 말이야. 뭐 그거대로 하지도 않을 거고 이뤄지지도 않잖아. 지 인생 지가 살겠지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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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결혼해서 처음 천만 원 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전집 책 파는 아줌마한테 전화가 온 거야. 아이들 전집이 백만 원이라면서, 초등학교 들어가면 교과과정이란 뭐랑 연결이 돼서 그런 걸 해줘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저기요 제가 천만 원 짜리 집에 사는데 백만 원 짜리 그런 책 사고 싶지도 않고, 나는 전집 같은 거 반대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랬더니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이, “아니 그럼, 아이가 학교 들어가서 열등아가 되길 바라세요?” 이러는 거야. 참 기가 막혀서. “근데 천만 원짜리 전셋집 사는 사람들한테 그런 비싼 책 팔아 보셨어요?” 물었더니 “더한 사람들도 다 샀다”는 거야. “그럼 그런 분은 그렇게 살라고 그러세요.” 그러고 전화를 끊었는데 분노가 치미는 거야. 그 전화를 끊고 나는 정말 그렇게 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때 참교육학부모회에 가입했어. 애가 학교에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내가 얼마나 극성인 엄마야? (웃음) 학원은 안 보냈지만 다른 쪽으로 좋은 교육에 대한 욕심과 기준은 있었던 거지.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같은 생각을 한 사람도 만나고 하다 보니 내가 가는 방향이 그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가려는 길에 여러 사람이 같이 있구나! 생각이 드니 외롭지 않더라고. 시간과 돈이 있었다면 정말 좋은 대안교육을 해줬겠지. 근데 나는 돈도 없고, 아이들 옆에 있어줄 시간도 없으니까 어쩌겠어. 그렇다고 대안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학교라든가 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 나는 일반학교 안에서도 대안교육은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냥 공교육에 다니면서 뭘 해줘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자유롭게 놔두자고 생각했어. 어차피 학교에 쫓아다니며 뒷바라지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 대신 애들이 뭐를 한다고 했을 때 막은 적이 거의 없어. 큰딸이 얼마 전에 그러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어릴 적에 엄마가 이걸 못하게 했다, 저걸 못하게 했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데 자긴 정말 할 말이 없더래. 그러면서 “엄마가 정말 너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내가 하겠다는 걸 막은 게 하나도 없어. 엄마를 급 존경하게 됐어.” 그러잖아. 그래서 내가 갑자기 오만해진 거지. 그렇다고 내 딸이 지금 버젓하게 뭐가 된 건 아니잖아. 지금 남들 보는 기준으로 잘 되어 있는 애가 아니거든. 아직도 자기 길을 찾아가는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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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옛날부터 마음이 불편했던 건 아이들 교육하면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던 유명한 분들이 학벌 없는 사회니 학력폐지니 좋은 말씀은 다 하시면서 자기 자식들은 별일을 다 해서라도 좋은 대학을 보내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막상 자기 자식은 그렇게 안 하는 걸 너무 많이 보면서 나는 말을 앞세우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사회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아. 그런데 자기 자식 이야기하면 자긴 안 그러고 싶은데 아내 때문이라고 그러지. 그걸로 가족과 싸우기 싫다고 핑계 대면서 넘어가고 안전선을 확보하는 거지. 그렇게 비겁하게는 살고 싶지 않더라고.
그렇다고 나도 이렇게 키우니까 너희도 이렇게 키우라고 하고 싶지도 않아. 왜냐하면, 사교육으로 대학가서 진짜 건강하게 훌륭하게 큰 사람들도 많잖아. 사교육 받는다고 애들이 다 나쁘게 되는 거 아니잖아. 일류대학 나와서 참교육하시는 교사 분들 얼마나 많아. 그래서 폄하하고 싶진 않고 오히려 그런 폭력과 경쟁을 견뎌준 애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 새낀 그거 못 견딘 거거든. 가끔 내 딸들은 너무 편하게 살아온 거 아닌가, 나중에 얘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고 살짝 의심해 본적 있어. 그런데 힘들고 모진 거 다 견뎌내는 게 또 꼭 좋은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지 좋아하는 거 할 때 아무 보상이 없어도 잘 견디는 걸 보고 아이들에게 내공과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거지. 근데 만~약에 나중에 못 견디면 그건 지 팔자야. 내 책임 아니야, 그거는!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아이를 진짜 믿는다는 건 ‘내 자식에겐 힘들고 가난해도 행복하게 잘 살 힘이 있다’는 믿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주 <아이와 함께 제주도 배낭여행하기> 저자
한겨레 2013년11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