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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지금은 떠나야 할 때

by 2mokpo 2013. 6. 24.

지금은 떠나야 할 때


부부에게는

죽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는

서약이 있다.

 

수도자는 평생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한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완전한 자유의지의 서약이다.

 

그래서 수도자는

장상의 소임 이동 권유 앞에서

왜? 라고 묻지 않는다.

 

떠나야 할 때 일어나

가야할 길을 가는 뒷모습이

진정 수도자다.

 

머물던 곳에서 인연 맺은

사람과 일에

왜 미련이 없겠는가.

 

그러나 떠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빈손으로

또 한 번 시린 바람 앞에 서 있는 자

그가 수도자다.

 

오전에 세 분 수녀님이 떠났다.

남은 이들은

싸리문 집 굴뚝에 남아 오르는

한 줄기

그리움을 바라본다.

 

오후에는 새로운 수녀님들이 도착하여

책과 옷 박스를 풀었다.

낯선 곳에서 또 한 번의 시작이다.

 

“성당은 어디에요?”

“저녁기도 시간은 몇 시죠?”

한 수녀님이 급히 불렀다.

“세면대 물이 내려가질 않아요. 고장인가 봐요.”

가서 보니 고장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세면대 중앙 부분 쇠를 눌러주었다.

물이 쑤욱 내려갔다.

“미안해요. 그걸 몰랐네…….”

 

언젠가 나도

새로운 공동체에 도착하여

이렇게 헤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