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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궁궐과 동굴에 갇힌 종교를 넘어서 -1

by 2mokpo 2013. 6. 9.

궁궐과 동굴에 갇힌 종교를 넘어서
유마거사가 말했다. “중생(衆生)의
병은 무명(無明)에서 오고 보살의
병은 대비(大悲)에서 온다.”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하느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위의 두 말
씀이 결국 우리 시대 모든 종교들과
신앙인들의 ‘불편한 화두’가 되었다.

 

살림이 각박해지면 맘에 여유가 없어 사계의 아름다움과 그 변화를 놓치고 지낸다.

그러나 중년기가 넘어가면 자연에 눈을 돌리고, 노년기가 되면 어느 정도 자연주의자가 된다.

본래 종교란 게 깊은 산에서 숲을 성전 삼아 발전했기 때문인지,

사찰이나 성당 밖에서 종교가 무엇인지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사람이 스스로 속는 방법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종교인이 종교라는 궁궐에 익숙해지면 사실 아닌 것을 믿게 되고,

종교동굴에 갇히면 사실을 믿지 않게 된다.
종교란 씨앗 같은 것이지 보석알 같은 것이 아니라는 함석헌 선생의 적절한 은유가 생각난다.

보석도 만들어지려면 지층 속에서 고열과 고압을 인내로써 견뎌야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구슬에서 싹이 돋지는 않는다.

필자는 함석헌의 ‘맘’이라는 종교시를 좋아하는데 그 시 앞부분과 끝부분을 아래에 옮겨 본다.
“맘은 꽃/ 골짜기에 피는 란(蘭)/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맑은 향을 토해./ ……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
종교가 맨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앞선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삶의 퇴비가 되어 흙과 섞인 골짜기에,

삶의 뿌리를 내려 자란 꽃들이 오늘을 사는 너와 나의 생명임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

둘째, 영글어 가는 자기 생명에 감사와 긍지를 지니면서 동시에 자기는 뒤따라오는 후속 생명의 밥과 꿈이 되어주는

‘생명의 징검다리’임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그 진실을 깨달으면 사람 되는 것이고 아직 못 깨달으면 짐승 상태와 다름없다.

가방끈이 길고 짧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옛날 농사짓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신 우리 조상들은 고등교육 받은 요즘 지식인보다 그 진실을 훤히 더 잘 알았다.

우리 사회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성공한 사람은 제가 잘나서 지금의 자기가 된 줄로 착각하는 데서 온다.


한겨레 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