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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힐링"이라는 돌팔이

by 2mokpo 2012. 9. 4.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해왔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치유’이다.

문학이나 대중문화 속에서 교회나 성당, 사찰은 상처받은 이들이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그려지곤 한다.

쫓기는 자들, 갈 데 없는 자들, 몰락한 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장소,

그래서 때로는 거대한 사기극이 벌어지기도 하는 장소.

지상의 불쌍한 이들은 천상을 바라봄으로써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치유의 은사’를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종교 역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업종변경을 한 사회에서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은 속세에 전가되기 마련이다.

 

요즘 번성하고 있는 ‘힐링’이라는 브랜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예컨대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녹음이 우거진 야외에서 유명인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포맷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이곳을 통해 일종의 대중적 신고식을 치렀다는 점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증명해준다.

이 프로그램에서 ‘상처의 치유’라는 말뜻을 가진 ‘힐링’은 진지함과 심각함보다는 즐거움과 예능으로 나타난다(‘기쁘지 아니한가’?).

 진지한 말과 심각한 의미를 극도로 기피하는 사회에서는 이처럼 상처와 치유의 과정마저도 가능하면 가볍고 발랄하게 재현하려 노력한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힐링’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딱 그만큼의 무게를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힐링’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나오는 수많은 정체불명의 책 제목들,

가령 ‘힐링 육아’, ‘힐링 코드’, ‘힐링 브레드’, ‘힐링 가든’, ‘힐링 모차르트’ 등은 우리 사회에서 ‘힐링’이라는 말이 어떤 식으로 범람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최근 박근혜 후보 쪽은 한국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캠프를 ‘힐링캠프’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힐링 코리아 정책’을 제안했다.

이 정책에는 ‘일자리 치유’를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경제 치유’를 위해 연령별 복지정책을 세우겠다는 등의 공약이 들어가 있다.

 ‘일자리’나 ‘사회경제’가 질병으로 은유되고 정치인들이 치유자를 자처하는 이런 상황은 현실정치가 아닌 구약성경에서나 볼 법한 종교적인 수사법이다.

 

‘힐링’의 범람 현상은 어쨌든 한국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2000년대의 유행어였던 ‘웰빙’이 더 조화롭게 잘 살기 위한 대중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2012년의 ‘힐링’은 더 잘 살고 싶기는커녕 받은 상처를 치료라도 하고 싶은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동안 살기는 더 팍팍해진 것이다.

모든 이에게 ‘자기 경영’을 하는 기업가가 되기를 촉구하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 속에서 개인은 한번 몰락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삶 전체를 걸고 ‘무한책임 경영’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주체는 항상적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힐링’은 이런 현실적 모순을 심리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려는,

어떻게든 자본주의의 본질만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뭔가를 해소해보려는 놀라운 전략이다.

 

‘테라피’가 상처에 가해지는 구체적 치료 행위를 의미한다면,

‘힐링’은 이를 통해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치료가 없다면 치유는 불가능하다.

오늘의 ‘힐링’이란 실질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 외상’ 환자에게 마음의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말하는 돌팔이에 가깝다.

우리 시대의 또다른 유행어인 ‘멘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이 사랑하는 것은 근본적 테라피보다는

부드러운 ‘힐링’이나 따뜻한 ‘멘토’이다.

이 ‘예쁜’ 사랑이 괴물을 낳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자료출 : 한겨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