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요정마을<카파토키아>을 떠나
기암절벽에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모습을 바꾼 창밖의 풍경은 가끔 양떼가 보인다.
“양이 무리 지어 다니는 이유는 양은 10m 이상은 보지 못한단다.
그래서 양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그 무리에 염소를 2~3마리 두는 이유는 양끼리 무리지어 다니는 꼴을 염소가 보지 못하단다.
개를 키우는 이유는 양떼를 다른 동물로부터 보호하며, 사람은 개만 잘 보호하면 많은 양떼도 한사람이 보호할 수 있다“ 는
가이드의 설명이 그럴 사 하게 들린다.
<악사라이>란 도시를 지나 평원 한 가운데 우뚝 선 네모난 건물 앞에 버스가 멈춘다.
이곳이 실크로드 상인들의 휴식처 였던 <술탄하느) 이다.
<캬라반사라이> 는 상인들의 휴식처라는 뜻이다.
그러니 버스가 멈춘 곳은 캬라반사라이인 <술탄하느> 이다.
요즘 ???휴게소 라는 의미였을 것 같다.
카라반사라이도 25~40 km 거리마다 만들어졌으며 이는 낙타가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 기준 이었다고 한다.
요즘 고속도로에 비유한다면 휴계소가 있는 거리 정도였을까?
<술탄하느>도 악사라이를 떠난 대상들이 하룻길인 4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의 서안에서부터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종점인 이스탄불(구 콘스탄티노플)까지 오는 길에
상단들이 쉴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이렇게 휴식처를 제공했다고 한다.
우선 넓은 평원에 사통발달의 평원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실크로드 12000 km 먼 길을 다니는 상인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해보였다
중국에서 출발해 목적지 이스탄불을 코앞에 두고 얼마나 가슴이 설레였을까?
대상들은 돈을 벌수 있고 신기한 문물도 볼 수 있고 정보의 교환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 길은 실크로드의 마지막 구간에 해당하는 페르시아나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콘스탄티폴리스 사이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이곳에 처음 카라반사라이가 지어진 것은 1229년 이었다고 한다.
문 양옆엔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정문을 지나 술탄하느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