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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19,숲의 과학적 가치

by 2mokpo 2011. 2. 16.

 

누가 “무엇이 숲을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오면 숲 속에 있는 것들을 열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숲이라는 말을 무심코 들었을 때 머릿속에 연상되는 것들은 많다.

물론 숲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가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무도 여러 종류로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단순한 모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로부터 특정한 지역의 높은 산에 올라가야 보는 주목의 군락이나

구상나무, 그리고 겨울의 우중충한 느낌 속에서도 수피에서 하얀 빛깔이 떠올라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자작나무와 은수원 사시나무(포플러)까지 다양하다. 거기다가 이파리로 구분짓는 침엽과 활엽,

성질로 나누는 상록성과 낙엽성, 씨방의 모양에 따라 구분하는 나자식물과 피자식물의 이분법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시선을 가지고 숲을 들여다보면 숲 속에 나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풀’이라는 말과 숲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풀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수와 모양으로 펼쳐져 살고 있다.

 

이런 것들은 숲과 나무를 동일한 것으로 쉽사리 등치시켜버리려는 인간의 의식에 제동을 건다.

초본은 나무와 동의어인 목본과는 쉽게 구별된다.

초본 같아 보이지만 좀 아리송한 버섯과 곰팡이들도 수풀과 같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도 버섯이다. 버섯은 다른 식물체의 양분을 빌려서 쓴다.

 

그런데 과학자들 중의 일부, 혹은 생물학자나 산림학자들 중에서도 일부의 전문가들만이 과학과 숲의 관련성을 따진다.

이것도 분류학자 혹은 식물학자들의 시선을 통해서 보는 것일 뿐이다.

나무와 풀도 생명체이고 생리적 작용이 있기 때문에 생리학의 눈으로도 숲을 볼 수 있다.

 

나무와 풀이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태양광선과 광합성이라는 생리작용을 하여 산소를 내준다는 것도 아주 기초적인 생리학 지식이다.

최근 ‘교토의정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숲의 관계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다.

 

그리고 최근에 널리 알려진 생태학이 있다.

다양한 종의 개체와 집단이 존재하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유기적, 무기적 상호작용이라는

 ‘관계의 논리와 체계’를 추구하는 관점과 학문이 생태학이다.

 

이러한 생태라는 사고틀로 숲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이 많다.

어떻게 혹은 가끔씩은 왜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들이 특정한 무리들끼리 공생을 하거나

경쟁을 하고 있는지가 관찰과 조사와 실험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태양광을 프리즘으로 분리하면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된다.

숲의 색깔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누구나 ‘녹색’을 대표 색깔로 꼽는다.

그런데 1960~70년대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내다 본 한국의 경관(landscape)은 산지를 포함하여 대부분 녹색이 아니었다.

과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도시들뿐만이 아니라 나무와 숲이 있어야 할 산지에도 식물은 그 양에서나 질에서 아주 빈약했다.

 

녹색의 빈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색깔은 시뻘건 민둥산이 대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로 들어오면 단지 백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그 무엇이었다.

 

경관의 색깔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잘 대변해주는 좋은 사례가 대구의 기온이다.

대구는 공장이 많고 분지여서 항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이곳에 도시의 녹지면적, 숲이 덮고 있는 비율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자 연중 최고 기온이 최소한 2~3도가 낮아진 것이다.

검은색이 가미되어 있는 그 곳의 공기뿐만이 아니라 더욱 쾌적해진 환경이 생성된 것이다.

 

녹색이 과학적으로 좋은 것은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소와 함께 기체성분의 유익한 물질들이 나무와 풀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경제개발과 산업화로 인해서 한반도 남쪽에서 배출되는 검은색은 그동안 줄기차게

심은 나무들이 풀과 어울려 만들어 낸 녹색에서 나온 산소에 의해서 어느 정도 정화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녹색의 균형! 이런 노력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가진 만큼의 풍요가 가능했을까 의문스러워진다.

 

숲은 나무와 풀을 이야기하면 과학적 내용이 끝난다고 해버리면 헛다리 짚는 꼴이 된다.

숲이 발달하고 더욱 녹색이 짙어지면 그동안은 별로 꼬물거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던 숲 속의 여러 분화된 공간들의 움직임들이 증가된다.

“숲에서 사는 게 나무와 풀 뿐이냐?” 혹은 “숲을 찾아오는 생명체는 또 없느냐?”

 같은 질문을 넌지시 던져 받으면서 ‘아차!’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누가 황제인지 모르는 생명체의 제국은 나무로 대표되는 식물의 왕국만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숲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은 나무와 풀을 해치는 해충을 포함하는 다양한 종류의 곤충들에서부터 다람쥐나 노루 같이 귀여운 동물들도 있다.

자연의 소리를 제공해주는 여러 종류의 새들,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 곰, 여우 같은 것들도 숲의 식구들이다.

물론 시뻘건 민둥산에 숲이라는 서식처가 존재하지 않았던

남한의 숲에는 호랑이나 늑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북아에도 식물과 동물의 왕국에 대한 시각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체의 제국이 식물과 동물의 왕국만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류에게 역사적으로 200년이 채 안된 시점에 알려졌다.

맨눈이 아니라 현미경이라는 특수한 장치를 통해야만 보이는 생명체들(세균)과 생명, 비생명의 중간에 속하는 것들(바이러스)도 존재한다.

미생물의 왕국도 숲에는 충분하리 만큼 존재한다.

 

과학의 시선으로 본 숲은 생명체의 제국이 이루어 내는 수많은 상호작용으로 넘쳐나는 생태계다.

 

〈이정호/ 고려대 생명자원연구소·과학연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