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숲은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곳이었으며,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며, 영감을 얻는 곳이었다. 로마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초대 왕 로룰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빤 숲 속의 무화과나무는 공회로 옮겨져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화의 세계에서 숲은 이처럼 풍요로움과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숲(forest)은 ‘바깥’을 의미하는 어원(foris)에서처럼 법이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무법과 암흑의 세계였다. 숲은 어둡고, 야수들이 살며, 위험한 곳이었다. 숲은 또 인류문명 발달과정에서 농경정착에 커다란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숲은 인류가 인간이나 가축을 위한 식량생산을 위해 개간하는 과정에서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류가 숲에 대해 취한 태도는 마치 성전을 치르던 십자군과도 같았다. 문명이라는 십자군이 지난 3,000여년 동안 숲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결과는 지속적 산림고갈과 황폐화였다. 이런 관점에서 숲은 인류 문명에 의한 박해의 대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숲은 원래 회복력이 강한 생태계로 문명에 의한 박해의 고삐가 느슨해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문명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땅을 되찾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산림고갈이 가속화된 지난 200여년 전부터 문명에 의한 숲의 박해는 문명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게임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동, 유럽, 동아시아 등 세계 주요 문명 발생지에서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확대된 산림고갈은 오늘날 주요 문명발생지역에서 대부분의 숲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오늘날 이 지역에서 원시림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으며, 과거 숲이 서있던 지역은 농경지, 목축지, 주거지 또는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주요 문명권 밖에 있었던 열대지방의 숲도 지난 200여년 동안 식민지화를 통한 강대국들의 자원착취 대상이 되면서 절반이상이 사라지고 열대림이 서있던 자리는 농경지나 목축지로 변했다. 지금도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매일 서울의 절반만한 크기의 열대림이 사라지고 1년 동안 파괴되는 열대림 면적을 합치면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크기가 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윌리엄스가 최근 펴낸 ‘지구의 산림고갈(Deforesting the Earth)’이라는 저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파괴된 숲의 면적은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1950년까지 수천년 동안 사라진 숲의 면적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 전역에서 진행된 산림고갈과 파괴가 얼마나 급속히 진행되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특히 그가 말하는 벌채면적은 벌채 후 다른 용도로 개발된 순수 산림고갈면적을 말하기 때문에 벌채 후 나무를 심어 복구시킨 면적까지 포함하면 지난 50년 동안 이루어진 산림파괴의 규모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그는 또 산림고갈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환경문제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숲은 왜 이같은 박해를 받고 인류문명으로부터 점점 사라지고 있는가? 일부학자들은 그같은 산림고갈의 뿌리를 서구역사에서 지배적 영향을 미친 유대기독사상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인간을 신과 자연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자연에 대한 우월적 자연관을 발달시켰으며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와 이용을 정당화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유대기독교 사상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산림고갈은 마찬가지로 일어났기 때문에 크게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산림고갈의 뿌리는 오히려 많은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농경, 목축, 화전, 전쟁, 인구증가, 산업활동 증가, 도시화, 과학기술의 발달 등 좀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원인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인류문명이 숲을 경쟁상대로 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동안 펼쳐온 사업 내용들이다. 이 사업의 주목적은 숲과 같은 어둡고, 무섭고, 복잡하고 예측불허의 야생자연경관을 단순화시켜 인간의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인간 친화적 문화경관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야생 숲을 베어내고 경작지나 나무농장, 목축지로 개간하는 농업, 임업, 목축업 등이 그같은 사업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인류문명은 이같은 사업과정에서 자신의 식량생산이나 증산에 방해되거나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생물 종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였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생산되는 에너지와 양분이 다른 생물 종들에게 분산되는 것을 막고 인류에게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숲과 그 속의 모든 생물 종들은 자신들의 집을 잃거나 전통영토에서 쫓겨나는 박해를 겪었다. 인류문명이 그동안 쌓아온 기술이나 정보와 지금까지 일어난 환경적 변화를 감안하면 숲에 대한 인류문명의 박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가속화될 전망이다.
인간중심적으로 표현하면 숲은 ‘인류문명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숲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문명은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는 암과 같은 존재이다. 지구상의 숲은 현재 문명이라는 암에 걸린 암환자인 것이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숲에서 시작된 암이 가이아란 살아있는 생명체의 신체를 이루고 있는 다른 부분으로까지 급속히 전이되는 데 있다.
숲을 이같은 암으로부터 구할 방도는 없는 것일까. 신화의 세계에서 그랬듯이 숲을 아름다움과 영감을 얻는 원천으로 그리고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경배하지 않는 한 숲을 암으로부터 구할 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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