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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6.불교와 숲

by 2mokpo 2009. 6. 30.

부처님은 아침 일찍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한 뒤에 다시 숲속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는 주위의 숲과 논밭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는 숲속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가끔씩 명상에 잠긴 채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강을 건너….’

이 글은 틱낫한의 ‘소설 부처님’ 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2,500년 전의 일을 오늘 일처럼 생생히 그려놓고 있다.

불교는 부처님이라는 한 위대한 각자(覺者)로부터 시작된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그가 깨달은 내용과 함께 불교이다.

부처님의 일생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항상 숲과 함께하였다는 점이다. 룸비니 숲속의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숲속의 궁궐에서 지낸 그는 29세에 출가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부다가야 숲속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녹야원 숲속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설한 후 숲을 찾아다니며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쿠시나가라 숲속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과 숲의 인연은 전생에까지 이어져 있다. 부처님도 깨닫기 전에는 비둘기, 사슴, 원숭이 등등으로 윤회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이 전생에 나무의 신(木神)이었을 때도 있었다.

바라나시의 어느 왕이 탑을 세우기 위해 숲을 베어내게 되었다. 목수들이 그 숲에서 가장 크고 신성한 밧다살라 사라수를 찾아가 “왕의 명령이니 목신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오”라고 말했다. 목신은 높고 큰 탑을 세우면 이웃한 나무들도 모두 베어질 것을 염려해 왕을 찾아가 설득했다. 왕은 다음날 숲을 베지말라고 명령하고, 그 숲을 금렵구로 선포했다. 밧다살라 목신은 미래의 석가모니였다(‘니파타’ 본생담).

불교가 숲의 종교인 것은 석가모니 외 다른 불보살들도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56억7천만년 후에 강림할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 역시 숲의 성자로 예언되어 있다.

‘…계두성에서 멀지 않은 숲에 용화수(龍華樹)가 있으니, 높이는 1요자나요, 넓이는 500보나 된다. 미륵은 그날 밤에 집을 떠나 용화수 아래 앉아 무상대도를 이룰 것이다. 그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번 진동하고…’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미륵하생경).

부처님과 수행자들은 철저한 무소유자들로, 따로 내 집이 없이 동굴이나 묘지를 찾아다니며 수행했다. 그러나 건·우기가 뚜렷한 인도의 기후는 그러한 삶에 큰 장애였다.

그러자 왕족과 장자들이 나서 그들에게 머물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처음 제공된 것은 건축물이 아닌 숲(園林)이었다. 최초의 숲은 마갈타왕국의 빈바사라왕이 제공한 왕사성의 죽림원이었다. 그 후, 가란타 장자가 죽림원에다 오두막 60채를 마련해서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가 세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수행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기 위해 손수 금전을 모으거나 숲을 해치지 않았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불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한 수행자가 자신의 거처를 짓기 위해 나무 한 그루를 베려다가 신에게 ‘혼자 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베지 말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수도승은 결국 나무를 베고 말았다. 그러자 신은 수도승의 아들의 팔을 부러뜨려 벌을 주었다.

부처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왕들과 장자들에게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기를 권장하였다. 신이 부처님에게 “누가 좋은 공덕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은 “과일나무, 그늘나무, 꽃 피는 나무 등을 심고, 공원(숲)을 만들고, 사원을 짓는 사람”이라고 했다(바나로파 숫타).

수행자들이 머무는 집(숲)을 훼손하는 것은 삼보(佛法僧)를 훼손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초목, 숲, 산림, 천택(川澤) 등을 태우지 말며, 파괴치 말라”(니건자경)고 부탁했다.

인도의 불교를 되살린 아쇼카 대왕은 이러한 부처님의 법을 실천한 숲의 황제였다. 그는 일생 동안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봐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권했다. 다섯 그루란, 치유력이 있는 나무, 열매를 맺는 나무, 땔감으로 쓸 나무, 집을 짓는 데 쓸 나무, 향기 나는 꽃나무 등이었다.

장자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넓은 숲을 사서 기증하거나 보전했다. 이 숲을 ‘아브하얏타나(Abhayatthana)’라고 불렀다. ‘위험하지 않은 숲’이란 의미를 가진 이 숲에서는 일체의 살생이나 벌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오늘날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시원이 바로 이 숲일 것이다.

미얀마는 불교의 옛 모습을 잘 전승하고 있는 나라다. 미얀마 사람들은 나무 심는 일을 ‘니밧드하 쿠살라’라고 한다. ‘가장 오래 지속되는 공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불교의 숲은 나무들의 단순한 집합, 또는 명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숲은 인간을 비롯해 온갖 생명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후손을 번식시키는 생명의 공간이다. 불교의 ‘불살생’ ‘방생’ ‘자비’ ‘금육’과 같은 덕목도 모두 생명의 숲에서 기인된 것들이다.

만약 불교가 생명의 숲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오로지 이기적인 생존만이 급선무인 사막이나 극한 환경을 무대로 했다면, 어쩌면 불교의 모습은 피와 고기, 배타와 보복, 살생과 전쟁에 훨씬 더 친숙해졌을지 모른다.

〈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 대표〉 경향신문 : 2007.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