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병영(한골목)
강진장날 사진을 담고 시장안의 소머리 국밥(3000원)으로 아점을 먹고
병영으로 ---
강진 병영과 하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배를타고 일본으로
항해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1653)
이듬해 서울로 이송된 후 1656년 6월 강진에 유배된 뒤
13년 28일의 유배 생활 중
절반이 넘는 7년간 강진과 인연을 맺는다.
골목 :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국어사전)
동네안을 이리저리 통하였으니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차곡차곡 간직한 정 깊은 길이다.
골목
정이 깊게
느껴지는 단어다
"이 길로 새약시 가매(가마)도 들어오고 생이(상여)도 나가고."
'하도 질어 한골목'이라고도 하며,
또 골목이 크고 길다 하여 ‘한골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골목은 병영성이 설영된 후 촌락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
한골목의 담장은
황토와 돌을 이용하여
빗살무늬 방식으로 쌓아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가능한 납작한 돌을 골라
15도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시킨 후
다음 층은 반대방향으로 15도 정도를 눕혀 쌓는 것으로
이 마을 사람들은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
강진 병영마을의 돌담은
다른 곳에 비해 담장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보통 2m 정도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곳도 있으니
당시 병마절도사에 근무하는 병정들이 말을 타고
순시를 할 때 집안이 훤히 보일 것을 염려한 것이다.
골목들이 질서 정연이 연결되어 있으니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골목임을 알 수 있다.
담장이 검게 변한 곳이 있는데
이는 1894년 동학농민 전쟁으로 불이 탄 흔적이니
500년이 넘는 장고한 세월의 역사가
돌담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병영마을 뿐 아니라
인근 도룡 마을에도 이 같은
하멜식 담쌓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자료 : 다음 검색에서 인용
한골목을 걷다가--
멀리 걷고있는 사람은 함께간 일행
하멜식 담을 볼 수 있는
한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