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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야기/정원의 꽃과 나무 이야기

상사화 잎과 꽃은 왜 따로 피어 서로 그리워하나

by 2mokpo 2017. 9. 21.


숲이 햇빛 가리지 않는 이른 봄 싹 내밀어 영양분 축적 뒤 여름에 꽃 피워
절 주변 많은 건 스님 번뇌 대리만족 위한 걸까…국내 자생종과 도입종 7종


 » 상사화의 서로 다른 품종.

상사화는 수선화과 여러해살이 풀로 이른 봄에 꽁꽁 언 땅을 뚫고 새싹을 내민다. 초여름까지 무성하게 자라다가 여름이 되면 새싹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할 무렵 땅속에서부터 기다란 꽃대를 올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런 이유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하여 상사화(相思花)라 부른다. 상사화에는 다양한 품종이 있는데 우리나라 산야에서 만날 수 있는 상사화는 자생종과 도입종을 포함해 7종이 있다.


상사화 (Lycoris squamigera Maxim.)



상사화의 기본종으로 분홍색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인가 주변에 많이 심겨 있어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종이다. 일부 인터넷 도감에는 한국 자생종이라 설명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산야에 자생하는 상사화는 발견되지 않고 인가 주변에만 사는 것으로 보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도입종이 아닐까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7~8월쯤 상사화 중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

진노랑상사화 (Lycoris chinensis var. sinuolata K.H.Tae & S.C.Ko )

 

» 진노랑상사화 꽃.

» 진노랑상사화 자생지.
8월 초쯤 주황색으로 꽃이 피는데 꽃잎이 라면 가락처럼 물결 모양인 게 특징이다. 진노랑상사화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숲 계곡 주변에 살고 있다. 어떤 이는 진노랑상사화를 꽃이 붉은색으로 짙어 ‘붉노랑상사화’라 부르기도 하는데 잘못된 이름이다.


위도상사화 (Lycoris uydoensis M.Y.Kim)

 

» 위도상사화 미색.




 » 위도상사화 흰색.

위도상사화도 한국특산종으로 전북 변산 앞바다 작은 섬 위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위도상사화’라 부른다. 필자가 위도 말고 주변 다른 섬에서도 위도상사화가 자생하는지 찾아보았지만 아직은 위도 인근 섬이나 내륙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꽃은 8월 중순쯤 흰색과 미색 두 가지로 핀다. 위도면에서 해수욕장 주변에 많이 심어 개화기 때 위도를 찾아가면 군락으로 피어나는 위도상사화를 만날 수 있다.

국내에 자라는 대부분의 상사화는 독성이 있어 식용이 어렵지만 위도상사화는 유일하게 독이 없어 식용이 가능하다. 위도 섬 주민들은 위도상사화 땅속 비늘줄기를 엿으로 고아 먹거나 꽃대가 올라오면 꽃이 피기 전 밑동을 잘라 큰 솥에 넣고 삶은 뒤 잘게 찢어 말렸다가 다시 물에 끓여 묵나물로 무쳐 먹는다. 상사화 중에 비늘줄기가 가장 크다.



백양꽃 (Lycoris sanguinea var. koreana (Nakai) T.Koyama)



 » 백양꽃.




 » 백양꽃 자생지.



백양꽃도 한국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으로 전남 백양사 절 주변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어 ‘백양꽃’이라 부른다. 꽃은 8월 말부터 주황색으로 피는데 가끔 흰색으로 피는 품종도 있다. 백양꽃은 부산, 창원 등 남부 해안지역과 전남 백양사, 전북 순창 등 서해안 인근 계곡 주변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아직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해 쪽으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붉노랑상사화 (Lycoris flavescens M.Y.Kim & S.T.Lee)


 » 붉노랑상사화 꽃.


 » 붉노랑상사화 군락.



흔히 사람들이 ‘개상사화’ 부르는 종이다. 꽃은 8월말부터 노란색으로 피지만 개화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이 붉게 변해 ‘붉노랑상사화’라 부른다. 붉노랑상사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여 야산이나 들, 인가 주변, 절 주변 등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상사화이다.






 » 붉노랑상사화의 다양한 품종들.


   

대부분의 상사화들은 꽃 색이 고유색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붉노랑상사화는 흰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제주상사화(Lycoris chejuensis K.H.Tae & S.C.Ko)


 » 제주상사화 1.




 » 제주상사화 2.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상사화이다. 8월 말부터 9월까지 노란색과 주황색 중간쯤 되는 색으로 꽃을 피운다. 제주는 겨울에도 따뜻하기 때문에 1월 중순에도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상사화의 싹을 만날 수 있다.

   

석산 (Lycoris radiata (L'Her.) Herb.)


 » 석산.



 » 석산 군락.



사람들이 흔히 ‘꽃무릇’이라 부르는 상사화이다. 원산인지가 어디 지역인지 불분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전라도 고창사, 불갑사, 선운사, 용천사 등 절 주변에 군락으로 식재되어 있어 해마다 추석 무렵이 되면 꽃무릇 축제가 열린다. 상사화 중에 가장 늦게 피는 종으로 추석 무렵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정열적인 붉은색 꽃잎에 마스카라 한 듯 늘씬한 꽃술이 아주 매력적인 상사화이다.



 » 석산 새싹.


 

대부분의 상사화들은 이른 봄에 싹이 나와 늦여름부터 꽃을 피우지만 석산은 유일하게 가을에 꽃이 지면 새싹이 나서 상록으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에 삭아 사라진다. 또한 상사화 중에 잎이 가장 가늘고 비늘줄기가 가장 작다.



 » 상사화 비늘줄기(인경).



식물들은 종간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데 어떤 종은 염색체 이상으로 열매를 맺지 않는 종도 있다. 종자를 맺지 않는 식물들이 생존을 위해 다른 번식 방법을 쓴다. 상사화는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가 비대해지면 꽃눈이 생겨 꽃을 피우고 비늘줄기가 최대치로 커지게 되면 더는 꽃을 피우지 않고 비늘줄기의 일부가 새로운 개체로 분화해 번식하는 특징이 있다.



상사화의 속명 리코리스(Lycor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리코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꽃이 여신처럼 아름다워 붙여진 속명이다. 상사화는 꽃가루를 만들어 날아가거나 종자를 산포해 번식하지 않는다. 대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이 영양번식으로 증식된 개체들을 여러 지역으로 옮겨 심도록 하는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다.



 » 종자로 증식된 상사화.


 

국내에 자생하는 상사화는 대부분 열매를 맺지 않지만 백양꽃, 진노랑상사화 2종은 열매를 맺고 종자로도 번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상사화는 다른 식물처럼 잎과 꽃이 차례로 나지 않고 시기를 두고 따로 나는 걸까. 그 이유로 필자는 상사화의 자생지가 숲이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숲 바닥에 자라는 상사화는 겨울이 끝날 무렵 숲이 우거지기 전에 잎을 내어 광합성을 한다. 이때 비축한 영양분으로 꽃가루 매개곤충의 활동이 활발한 여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물론 숲 속에 사는 다른 식물은 잎과 꽃을 내는 시기를 나누지 않고도 잘 살아가니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상사화의 번식이 꽃보다는 뿌리가 갈라지는 영양번식을 통해 이뤄지는데도 계속 꽃을 피우는 이유도 궁금하다. 아마 유전적 본능이 살아있기 때문 아닐까.



 » 상사화 꽃에 날아든 나비.


 

상사화가 절 주변에 많이 식재되어 있어서 그런지 속세의 여인과 스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전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상사화의 비늘줄기는 춘궁기에 전분을 내어 구황식물로 이용하고 꽃을 말려 물감으로 만들어 탱화를 그린다. 상사화의 비늘줄기에서 즙을 내어 탱화에 바르면 좀이 슬지 않고 색이 바래지 않아 절 주변에 상사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필자는 후각이 둔해 상사화 꽃에 향기가 있는지 확인치는 못했지만 상사화에 곤충을 부르는 향기나 꿀이 있는지 가끔 나비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절 주변에 수국이나 불두화처럼 꽃은 피우나 향기나 꿀이 없어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지 않는 식물을 많이 심는다. 이는 속세를 떠나 득도하는 스님들이 아름다운 꽃에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번뇌가 생겨 정신수양에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 그렇게 한 게 아닐까 한다.



아니면, 스님들이 속세를 그리워하는 번뇌의 마음을 상사화처럼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대리만족하고 정신수양에 매진하려는 스님들의 슬기로운 지혜가 벌과 나비가 찾지 않는 식물식재로 표현된 건 아닐까?

 

글·사진 양형호/ 국립수목원 전시교육과 현장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