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이야기 --/신윤복(혜원)

사시장춘

2mokpo 2015. 7. 14. 15:52

 

 

 
작품명 : 사시장춘
• 작가 : 신윤복
• 제작연대 : 19세기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재 료·크 기 : 종이에 옅은 채색, 27.2×15.0㎝

원래 조선 회화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의 극치는 앵도화가 피어나는 봄날의 한낮,

한적한 후원 별당의 장지문이 굳게 닫혀있고,

댓돌위에는 가냘픈 여자의 분홍 비단신 한 켤레와

너그럽게 생긴 큼직한 사나이의 검은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아무 설명도 별다른 수식도 필요가 없다.
그것으로써 있을 것은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는 것이다...

 

정사의 직접적인 표현이 청정 스러운 감각을 일으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뿐더러
감칠맛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면,

춘정의 기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보다 더 품위 있고 은근하고 함축 있는 방법은 또 없을 줄 안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격있는 에로티시즘은

결국 '은근'의 아름다움에 그 이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그림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해설----
이 [사시장춘(四時長春)]을 한국적 춘의도의 으뜸으로 치고 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정작 탄복할 것은 그의 글 솜씨다.
굳이 낯 붉힐 설명 하나 없이 "있을 것은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 는 표현으로

슬쩍 에누리하고 지나가는 그의 속셈, 이야말로

어떤 의뭉스러운 그림도 따라가지 못할 고수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림이 그 사람이고 사람이 그 그림” 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참말이다.

최순우 선생의 해설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호기심은 속인의 버리기 힘든 버릇 아니던가?
'있을 것'은 뭐고 '될 일'은 뭐란 말인가.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에 그칠지언정

[사시장춘(四時長春)]에도 덧붙일 말들이 남았을 것 같아 자꾸 아쉬워진다.

-중략-

눈 똑바로 뜨고 못 볼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가 추태요, 하나가 미태다.
어여쁜 자태를 무슨 배알로 직시하겠는가.
성긴 그림자로 살그머니 볼 나름이다.
하물며 남녀의 춘정을 표현하는 그림 에서랴...

지킬 것 지켜가면서, 가릴 것 가려가면서,
버릴 것 버려가면서 그릴 때, 운치가 샘솟는 법이다.
음욕이 붓보다 앞서면 그림은 망친다.
--중략--

개숫물 먹고 먹물 트림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배운 게 있고 든 게 있어야 춘정의 진경을 안다.
--중략--
마루 위의 신발을 보라!
여자의 신발은 수줍은 듯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그녀의 마음이 물들어서일까.
두근거리는 도화색이다.
눈여겨 볼 장면은 남자의 검은 갖신이다.
도색 곁에 놓인 흑심인가?
흐트러진 꼴로 보건데 후다닥 벗은 것이 틀림없다.
긴 치마로 오르기에는 제법 높아 뵈는 마루라서

남자는 먼저 여자를 부축해서 방안에 들였을 것이다.
그러고선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갈 요량으로

조이는 신발을 채신 머리 없이 내 팽겨친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급했을꼬...
남자 마음은 다 그렇다.


흥미롭고 안쓰럽기는 술병을 받쳐든 계집종이다.

엉거주춤 딱한 심사로 돌처럼 굳어버린 저 모습,

뫼시는 어른은 꽁꽁 닫힌 장지문 안에서 숨소리마저 죽인 듯한데,

자발없이 이 내 새가슴은 콩콩 뛰니, 들킬세라 숨어버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몸종은 고약한 봉변을 당한 꼴이 되어 버렸다.
작가는 재치를 발휘한다.

앞으로 쭉 내민 손과 뒤로 은근슬쩍 빠진 엉덩이가 그것이다.
계집아이의 곤혹스러움을 묘사하는데 이보다 능수는 쉽지 않다.
그 솜씨를 두고도 아이의 표정은 그리지 않았다.
그것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속담에 "나이 차서 미운 계집 없다" 하지 않았는가.
한창 때는 도화 빛이 돌기 마련이다.
그러나 몸종 품신이 아직 성의 단맛을 알 나이는 아니다.

연분홍 댕기마저 애잔해 보이는 그런 아이의 풋된 표정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대는 변태다.
다만 한 줄기 홍조를 옆 얼굴에 살짝 칠한 것으로 작가는 붓을 거둔다.

손철주 지음 그림보는만큼 보인다 4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