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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산초백두도

by 2mokpo 2014. 12. 16.

 

 

충암(忠庵) 김정(金淨) 선생의 산초백두도(山椒白頭圖)

두 마리의 박새가 그려져 있는 그림인데

우리나라의 화조도에서는 드물게 산초나무가 배경으로 함께 그려져 있다.


충암(忠庵) 김정(金淨, 1486 ~ 1520) 선생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字)는 원충(元沖)으로서 조선 중종 때 살았던 비운의 선비다.

그는 3세 때에 할머니 황씨로 부터 수학하기 시작하여 22세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도승지, 이조참판, 홍문관 제학,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는데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도학정치(道學政治)의 실현을 위해 미신을 타파하고 향약을 보급하였으며,

현량과를 시행하여 학문이 높은 선비를 관리로 등용시키는 등 많은개혁정책을 추진하였는데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中宗反正) 당시 공이 없는 사람은 공훈을 박탈하여야 한다는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세력인 훈구파(勳舊派)의 공격을 받아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발생함에 따라
극형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광필 등의 옹호로 금산과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2년후인 1521년(중종 16년)

우리 역사에서 말하는신사무옥(辛巳誣獄)이 발생하였으며

이때 충암(忠庵) 김정(金淨) 선생은 귀향지인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고

절명시(絶命詩)를 남긴 후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은 충암(忠庵) 김정(金淨) 선생이 제주에서 귀향살이 하던

1520년에서 1521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여진다.

이제 그림의 구성과 형태를 살펴보면....


그림의 오른쪽 하단으로부터 경사지게 위로 뻗어 올라간 가시가 많은 산초나무의 두가닥 가지에

새가 각각 한 마리씩 앉아 있다.
 새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텃새인 박새로 보이는데 위쪽의 새는 위쪽 산초나무 가지를 움켜진채

아래쪽 새를 또렷하게 내려보고있으나, 아래쪽 새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위쪽에 앉아있는 새의 머리에는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일반적인 사실적인 박새에서 볼 수 없는 작가의 관념적(觀念的) 의사의 표현으로 의도적으로 그려진 게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그림에서 보조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가시가 많은 산초나무 가지,

산초잎 그리고 산초 열매가 부분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산초나무는 향신료로서 중국의 후비(后妃)들은 방의 벽을 초피 열매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후비가 거처하는 곳을 초방(椒房), 초옥(椒屋), 초각(椒閣), 초전(椒殿) 등으로 불렀고,

후비의 부모를 초방지친(椒房之親)이라 불렀다.

따라서 산초나무는 후궁 또는 외척(外戚)의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에서 위쪽에 있는 새는 아래쪽의 새를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아래쪽의 새는 고개를 숙인채 모른채 하고 있으며

화면의 오른쪽 귀퉁이 중간 부분에 초피의 열매인 초자(椒子)가 보이는데

그 갯수가 10개이니

 10은 ‘공허와 몰락, 그리고 암흑천지에서 헤매는 고독한 수리‘라는 뜻이 있으니

두 마리의 새 상호간에 불편한 관계가 조성되어 있음이 느껴지며,

 

두 새가 앉아 있는 산초나무의 나뭇가지가 각각 처음부터 출발이 다른 가지인데

윗쪽의 새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가 상대적으로 더 굵게 보이니

이는 당시 홍경주를 중심으로 한 중종반정의 공신세력인 훈구세력(勳舊勢力)이고

아랫 쪽 가지는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현량과(賢良科)를 거쳐

조정에 들어간 신진 사림세력(士林勢力)으로 보여지는데
두 가지에 수많은 가시가 있으니

이는 상호 대결 국면으로 보이면서 가지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이니

사림세력이 불리한 형국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산초잎이 생긴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의 위쪽에 있는 산초나무에 붙은 산초 잎은 5가닥이고,

아래쪽에 있는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산초 잎은 4가닥이니  

五는 ‘변화하면서도 좋은 일에 기여 성공하는 수’이고

四는 ‘요절과 방탕으로 불안에 떨며 재난과 앙화(殃禍)가 꼬리를 물고 다니는 수리’라는 풀이가 있으니
위쪽에 있는 새는 변화무쌍하면서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는 있는 형국이나

아래쪽 새는 그로 인해 재난과 불행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두 가닥의 나뭇가지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것은 서로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음인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랫쪽 새의 등쪽 부분의

산초나무 가지를 보면 가시가 가장 크고 예리하며
윗쪽의 새가 가지 끝에 앉아 있는데 산초나무 가지가 경사지면서 아래에 있는
새쪽으로 휘어져 있어 곧 아랫쪽 새를 찌를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지니 아마도
귀향가 있는 조광조나 작가 자신에게 조만간 죽으라는 사약(死藥)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신진 사림세력이 중종 임금의 후궁을
이용한 훈구세력에 의해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사멸(死滅)해 가는 마지막
문턱에서 냉혹하고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는 현실 정치세계를 비판하면서
과거의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작가 김정(金淨) 선생은 1521년 10월 말에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고는
얼굴빛 하나 변치 않은 채 술을 가져오게 하여 통쾌하게 마신 다음 형과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어 노모를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고 절명시(絶命辭)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그 절명시(絶命辭)를 읽어보면

 

                          投絶國兮作孤魂             멀리 떨어진 지역에 버려져 외로운 혼이 되는구나.
   遺慈母兮隔天倫             어머님 두고감이 천륜을 어기었네

遭斯世兮隕余身             이런 세상을 만나 내 몸 죽으니
 乘雲氣兮歷帝閽             구름을 타고 가서 상제를 찾을까
          從屈原兮高逍遙             굴원을 따라가서 높이 거닐기라도 할까
         長夜暝兮何時朝             긴 밤 어두워라, 어느 때에나 밝으려나.
          烱丹衷兮埋草菜             붉은마음 빛났건만 풀 속에 묻히게 되네
                    堂堂壯志兮中道             당당하고 크게 품은 뜻이 중도에서 꺾이는구나.
 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라

라고 하였으니
나이 36세에 의기가 꺾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선생의 한(限)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