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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이징(묵죽도,묵난도)

by 2mokpo 2014. 12. 16.

 

 

허주 이징(虛舟 李澄)은 1581년(선조 14)∼미상. 조선 중기의 화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함(子涵), 호는 허주(虛舟).

16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이경윤(李慶胤)의 서자(庶子)로, 화원으로 벼슬은 주부를 지냈고,

원접사(遠接使)의 수행화원으로 동행하였으며, 위항문인 유희경(劉希慶)의 요청에 의하여 그의 별서(別墅) 실경산수화인 임장도(林莊圖)를 그렸다.

소현세자가례반차도(昭顯世子嘉禮班次圖)와 인조장렬후가례반차도(仁祖莊烈后嘉禮班次圖)를 제작하는 데 이기룡(李起龍)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만년에는 1645년 소현세자를 따라왔다가 3년간 머무르고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냈다.

허균(許筠)은 그를 가리켜 산수·인물·영모(翎毛)·초충(草蟲)에 모두 능하여

이정(李楨)사망 후의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라고 하는 등 당시에 가장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로 평가했으며,

대표작으로 연사모종도(煙寺暮鐘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노안도(蘆雁圖: 개인 소장) 등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필치와 고전적이면서 단아한 구성이 일품인 허주 이징(1581~?)의 '난죽6곡병'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담겨 있다.

원래 여덟 폭이었던 이 그림에는 원작이 있다.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가 폭마다 오언절구를 지어줘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 희대의 명물로 꼽혔던 윤언직의 '난죽8곡병'이다.

이 그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는 데 두 선비가 8수 중 7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조광조의 후손이

당대 최고 화가인 이징에게 의뢰해 되살려냈다.

 

정암 조광조의 시
절벽이라 난초도 거꾸로 자랐고 

돌에 박혀 대나무도 드문드문하네

절개란 힘든 일이지만 평안할 때나 험난할 때나 변함이 없고

절벽에서 뿜는 향기는 여전히 스스로 그윽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