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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야기/정원의 꽃과 나무 이야기

산수국

by 2mokpo 2014. 2. 18.

헛꽃이 있어 참꽃이 열매를 맺는다 

 


▲ 산수국의 헛꽃 산수국의 헛꽃이 잎맥만 남기고 서서히 봄에 자리를 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백설의 눈 속에 나비가 앉아있는 듯, 산수국의 헛꽃이 고개를 숙이고 잎맥을 드러내고는 피어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 피어난 꽃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산수국은 자잘한 참꽃 수백송이가 모여 한 송이처럼 곤충을 유인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헛꽃도 피워낸다.

헛꽃은 참꽃을 위해 봉사하지만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 헛꽃이므로 그렇다.

 

▲ 산수국의 헛꽃 비썩 마른 산수국의 가지를 부여잡고 겨우내 추위와 사투를 벌였다. 

 

긴 겨울을 보내면서 헛꽃은 얼고 녹기를 반복한다.
겨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잎맥만 남아있어 가볍다.

그렇게 가볍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마감하고나면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비썩 말랐던 가지에서는 푸른 가지와 이파리를 낸다.
한층 더 풍성해진 산수국은 또다시 소담스러운 보랏빛 참꽃을 피우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참꽃 가장자리에 헛꽃을 피워낸다.

참꽃과 헛꽃의 조화가 있어 산수국은 더욱 더 풍성해진다.

 

▲ 산수국의 헛꽃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점점 가벼워진 산수국의 헛꽃 

 

참된 것과 헛된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늘 참된 것을 추구하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헛된 것을 좇아 살았음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참된 것도 헛된 것도 없다.
그냥 모두 삶이다. 헛된 것은 참된 것을 주인공 되게하는 조연이다. 그것이 주연이 되려고 하면 문제겠지만,

자연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 산수국의 헛꽃 조밀조밀 씨앗을 맺고 있는 것들은 참꽃이 남긴 흔적이다. 

 

아직도 백설의 눈이 남아있는데,

마치 꽃이 피어난듯 꽃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산수국의 헛꽃을 바라보니 마음이 조금은 알싸하다.

헛꽃이었던 것도 억울했을지 모를 일인데, 온 겨울 맨 몸으로 겨울을 난 것도 힘든 일인데,

이젠 봄이 온다고 바스러져가는 꽃잎. 이러다 봄비라도 내리면 남은 잎맥이 물을 먹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흙에 떨어지면, 흙인지 꽃인지 구분도 안 될 흙빛의 삶이다.

그렇다고한들 그들의 삶이 의미없는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삶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꼭 참꽃이어야 제대로 된 꽃이고, 헛꽃이라도 피어나지 못한 것 아니고,

제대로 헛꽃답게 피어난 것이니 의미있는 삶일 터이다.
 

▲ 산수국의 헛꽃 십자화 모양의 헛꽃, 그의 삶도 헛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누구나 주인공만 되려고 하는 세상에서 조연으로 살고, 그리하여 꽃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계절에

잠시나마 주인공처럼 살아보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들도 없다.

그래도 꽃은 슬퍼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주연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조연으로 헛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 둘의 관계는 자연처럼 서로 '더불어 삶'이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렸다.

일등, 재벌, 권력, 학벌, 지연......
그 모든 것들이 위계질서가 되어 꼴찌, 중소기업, 권력밖에 있는 이들,

소위 삼류대학과 또는 특정한 지역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세상이며, 손가락질 당하는 세상이다.

 

▲ 산수국의 헛꽃 산수국의 헛꽃도 이제 한 장 두장 이파리들을 보내고 있다. 

 

헛꽃이 있어 참꽃이 열매를 맺었나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상하관계가 없다. 참꽃은 참꽃대로, 헛꽃은 헛꽃대로 묵묵히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준 헛꽃, 그에게 신은 겨우내 꽃처럼 존재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은 아닐까?

누군들 아름답게 피어나고 싶지 않을까?
아름답게 피어나지 못한 꽃들은 그 마음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피어나고 싶었지만, 척박한 바위틈이었을 수도 있고,

바람에 줄기가 꺾였을 수도 잇으며, 막 피어나던 순간에 짓밟혔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아름답게 피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니, 그런 순간에도 온힘을 다해 피어났으니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다.

 

▲ 산수국의 헛꽃 봄이 오면 저 마른 헛꽃들은 흙으로 돌아가고 새순이 돋아 꽃을 피워낼 것이다. 

 

나는 참꽃만 꽃이라고 대접받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그래서 모든 영광을 참꽃이 다 누리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라고 본다.
헛꽃과도 같은 사람,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었던 사람들도 함께 영광을 누려야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헛꽃과도 같은 사람들, 주연의 자리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지 않음에 대한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천하게 여기고,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잠시잠깐 그것을 위해 굽신거리다 군림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헛꽃같은 사람들은 설 자리가 있는가?

그래도 꿋꿋하게 그렇게 살아가도 좋겠다는 위안을 얻는 것은,

저 긴 겨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지켜온 산수국의 헛꽃을 통해서다.

 

출처 : 오마이뉴스 14.02.16 15:45l  김민수(d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