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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박연폭포

by 2mokpo 2012. 8. 4.

 

박연폭포

 

계상전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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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겸재 정선’의 그림

<계상전거도>가 들어 있다.

 

정선(1676년 ~ 1759년)은 조선후기의 화가이자 문신이며,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

호는 겸재입니다.

20세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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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는 산과 물이다.

산수화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이다.

화조화는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이고,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이며,

인물화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산수나

화조나 초충이나 인물이나 그림의 소재이긴 매 한가지다.

그러나 산수화는 산수를 그리되,

산수를 그렸다고 다 산수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산수를 그린 서양 그림은 산수화가 아니다.

그것은 풍경화다.

 

산수를 그렸으되 다 산수화는 아니라는 말은 여러 겹의 뜻을 지닌다.

우선 그림이 되는 산수가 있고, 아니 되는 산수가 있다는 것이다.

경치 좋은 산수가 그렇지 못한 산수보다 더 많이 그려진다.

이것은 당연해서 덧붙일 설명이 없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즉 그림 속의 산수가 그림 밖의 산수와 다르다는 얘기도 된다.

 하고많은 우리 옛 그림 중에서 이처럼 간단치 않은 속뜻을 지닌 화목畵目이 바로 산수화다.

그러니 “산수면 산수인가, 산수라야 산수지”라는 말은 부질없는 댓거리가 아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연암이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놀았다.

어떤 이가 주변 풍광을 구경하다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 강산이 그림같구려.” 뭐든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연암인지라, 한마디 쏘아붙인다.

“이보쇼, 강산이 그림같다니… 당신은 강산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사람이요.

도대체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소,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소?”

 

여기서 ‘강산’은 ‘산수’로 바꿔 써도 무방하다.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소,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소?”라고 한 연암의 속내는 요령부득이다.

그는 부적절한 비유나 잘못된 비교를 탓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의 뜻은 ‘강산은 강산이고,

그림은 그림이다’라는 데 가깝다. 이는 어깃장 놓는 말이 아니다.

산수와 산수화의 관계를 놓고 보자면 이 말은 모더니즘의 폭탄 선언이다.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는 신화요, 문학이요, 환영이었다. ‘

그림은 그림이다’라는 정의는 모더니즘의 권리장전이다.

연암은 18세기 조선 문사로서 20세기 모더니즘을 예견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연암과 동시대를 살았던 호생관 최북이란 화가가 있다.

최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행奇行을 많이 남긴 광화사狂畵師다.

반 고흐는 제 귀를 잘랐지만

최북은 제 눈을 찔렀다.

 ‘애꾸 화가’ 최북이 산수화 한 점을 주문 받아 그려주었다.

그림을 받아든 고객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산수화를 그려 달랬는데, 어찌 산은 있고 물은 없소?”

그러자 낄낄거리면서 최북이 던진 말이 걸작이다.

“야, 이 눔아, 그림 밖이 다 물이다.”

 

그럴싸한 대답이다.

 최북의 말은 단지 자신의 무딘 붓을 변명한 것이 아니다.

 최북에게 되물어보면 안다.

그는 그림 밖이 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그린 그림 안의 산은 무엇인가.

 최북은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답하지 않을까.

 연암은 “강산은 그림이 아니요, 그림은 강산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최북은 “강산이 그림이요, 그림이 강산이다”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연암은 모더니스트이고 최북은 아이디얼리스트다.

강산과 그림의 경계를 허문 최북은

 “천하의 명인인 나는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마땅하다”며 금강산 구룡연에 뛰어들기도 했다.

 

산수화는 산수를 그리되,

 이상화된 산수를 그린다.

그래서 산수화는 지도가 아니다.

설혹 실경을 그렸다손 치더라도 산수화의 실경은 그린 이의 대체된 이상이다.

그의 이상경이 실경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경치를 그리는 것, 즉 사경寫景은 뜻을 그리는 것,

즉 사의寫意와 같은 것이다.

 

연암과 최북의 어법을 빌리자면 “산수화와 산수는 같지만 같지 않고,

산수화와 산수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고나 할까.

‘요산요수’를 설파한 공자도 사의 산수화에 한몫 거든다.

 “슬기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조용하다.

슬기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 산과 물을 어진 자와 슬기로운 자에 빗댄 말이다.

이때 산수화는 의인화에 다름 아니다.

 

또한 산수화는 산수를 그리되, 정경화情景化된 산수를 그린다.

산수화의 정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남송의 시인 강기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경치 속의 정. 강기는 이를 “물이 흐르니 마음이 초조해지지 않고,

구름이 있으니 뜻이 또한 느려진다”고 비유한다.

물과 구름에서 일어나는 정을 일컬은 것이다.

 

다음으로 정 속의 경치. “주렴을 걷으니 오직 흰 물이요, 바위에 기대어도 또한 푸른 산이로다.

” 이는 정에 겨워 바라본 물과 산이다.

 

마지막으로 정과 경치가 합쳐진 상태.

“시대를 한탄하니 꽃도 눈물을 뿌리고, 이별을 한탄하니 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 이는 일어나는 정과 보여지는 경치가 다르지 않은 경지다. 

 

끝으로 산수화는 산수를 그리되,

 노니는 산수를 그린다.

산수화를 다른 말로 ‘와유臥遊’라고 칭한다.

늙고 병들어 누웠으니 산수화나 걸어놓고 노닌다는 뜻이다.

 

 

손철주 /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중에서